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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면 경찰이 되는 대학

약 7분잡생각

이력이 특이하시네요

대학원을 다닐 때부터 자주 듣던 소리다. 그럴만도한게 나는 경찰대학이라는 한 해에 고작 100명의 학생들을 어려운 시험을 거쳐 뽑아 4년 동안 유사 군생활을 시키는? 좀 특이한 대학을 나왔다. 심지어 학교에 전공은 고작 2개. 법학과와 행정학과. 나는 그냥 이름이 멋있어서 법학과로 골랐고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경찰대학은 다른 대학과 다른 여러 특징들이 있다.

  • 경찰대학은 학비가 없다. 난 단 한번도 학교에 돈을 내본적이 없다. 오히려 한 달에 몇십만원씩 품위유지비(용돈)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 경찰대학은 통학이라는 게 없다. 심지어 학교밖을 나갈 수 있는 날도 제한적이다. 모두가 기숙사에서 규칙을 준수하며 살아간다.
  • 경찰대학은 취업걱정이 없다. 졸업을 하면 모두가 “경위”가 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으로 치면 7급 공무원 정도의 직장이 졸업과 동시에 생긴다. 학점 조건도 없다. 100등을 해도 졸업만 하면 생기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경찰대학은 졸업 후에 6년간 경찰로 근무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면제받은 학비부터 품위유지비까지 알뜰살뜰히 모은 청구서가 나에게 날라온다. (나는 참고로 3천만원 정도를 반환했다)

경찰대생이지만 창업이 꿈입니다만…

전국에 창업과 가장 거리가 먼 대학을 뽑아보라고 하면 경찰대학이 Top 5 안에는 들어가지 않을까? 왜냐면 공무원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한 대학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전국에 창업과 가장 거리가 먼 대학생을 뽑아보라고 하면 역시 Top 5 안에 경찰대학생이 뽑힐 것 같다. 미래에 어떤 일을 할 지 심지어 그 직장마저 정해진 상황에서 창업이라는 선택지를 떠올린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소 생뚱맞을 수 있지만, 대학생인 나는 창업을 하고 싶어했다. 응? 창업을 하고 싶으면 문과라면 경영학과나 최소 다른 일반적인 대학을 가는게 맞지 않나? 의문이 들 수 있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후회로 남은 몇 안되는 선택들이 있는 데 그 중 No.1이 바로 경찰대학을 진학한 것이다. 그런데 왜 경찰대학을 갔고,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후회를 하게 되었는 가는 추후에 다시 다뤄보려고 한다. 이것만 해도 단편 에세이가 하나 나올 것 같다.

각설하고 나의 창업에 대한 꿈은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나는 막연하게 경제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 당시에 경제라는 과목이 너무 재밌기도 했고 무언가를 분석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도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스티브 잡스 평전을 접하게 되었다.

어쩌다 그 책을 펼쳐들게 되었는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두꺼운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으며 나는 끊임없이 전율했다는 것이다. 책이 나에게 감정을 환기시키는 경험을 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나는 책 속에서 그의 엄청난 에너지와 집중력, 소명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그 전까지 알고 있던 세계, 즉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얻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것 외에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책을 덮을 때쯤 결심했다.

언젠가 꼭 창업을 해봐야지. 가능하면 IT 창업으로!

“언젠가”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지만.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창업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기에 경찰대학을 진학한 것이기도 했고.

정상적인 반골

대학을 다닐 때 그 안에서 나는 좀 독특한 편이었다 (물론 보통의 기준에선 평범한 대학생이었을 지도) 소위 “반골”이라 불리는 경찰대학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에 반발하는 소수 무리에 속했다. 경찰대학은 예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여러 전통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로

  • 학년은 절대선이다. 나이? 인품? 합리적 이성? 그런건 계급장 (우리는 학년이 구분되는 계급장을 어깨에 달고 다녔다)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선배의 말이 곧 진실이고 법이었다. 거기에 반하는 순간 나는 시스템으로부터 수많은 공격(?!)을 받게 된다
  • 후배는 선배에게 인사가 아닌 “거수경례”를 했다. 맞다. 군인들이 행사에서나 할법한 그 손을 번쩍 들어올려 눈썹 끝에 손끝을 맞추는 그 인사다. 가벼운 목례는 어쩌다 양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나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이었다. 근데 다소 모순적이었던 건 경례를 하고 한번 더 목례를 하며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했었다. 거수경례가 인사라고 하지만 어쨋든 진짜 인사는 아니니 2번 인사를 하는 그런 모양새였다
  • 후배는 선배에게 절대 복종하되, 선배는 후배에게 아낌없이 돈을 써야했다. 감히 선배의 지시를 무시하거나, 말대꾸를 할 수 없다. 짖으라면 짖고, 기라면 기어야 했다 (물론 이런걸 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로). 하지만 그 대가로 선배는 후배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야 했다. 밥을 먹거나 심지어 커피 한 잔을 마실 때에도 모두 결제는 선배몫이다.
  • 모든 일정은 점호를 위주로 돌아간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아침점호를 하고 구보를 뛰었다. 매주 2회가 있는 저녁점호에서는 기숙사 안을 반도체 공장 부럽지않게 깔끔히 청소한 뒤 선배들로부터 검사를 받았다. 바닥에 머리카락 하나, 창틀에 먼지하나라도 발견되는 날에는 다시 수많은 공격(?!)을 받게 된다.
  • 대체로 학업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대학생들이 왜 학점을 챙기는 지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레 경찰대학생들이 학점 관리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해진다. 학과목도 대체로 일반적인 교양이나 깊이있는 전공과목보다는, 경찰이 되기 위해 필요한 실무적인 지식의 비중이 꽤나 높은 편이었다. 이로 인해 더욱 학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 역시 그랬고)

나는 이런 시스템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 왜 학년이 높다라는 이유만으로 선배로부터 부당한 대우나 지시를 받아도 그저 참아야만 하는 지.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적 친밀감을 높여주지 못하는 형식언어에 불과한 경례는 왜 하는 건지. 후배는 왜 매번 선배에게 밥을 얻어 먹어야 하는지. 깔끔하게 정리만 하면 되지 왜 청소를 위한 청소에 몇시간씩을 써야하는 지. 무엇보다 지적인 호기심들이 끓어오르는 그 때 왜 이런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과목들을 공부해야하는 지. 참 불만이 많았었다. 그래서 내 동기들은 나를 “경찰대학에 불만이 많은 모범적인 반항아” 정도로 기억한다. 내가 학점이 꽤 좋았고 심지어 학교생활도 성실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스템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식

나는 대체로 학과 공부에는 큰 흥미는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일부 과목들에만 흥미가 있었으니 편식을 했다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내가 흥미가 있었던 과목들은 전부 1학년 때 배우는 과목들이었다. 민법원론, 형법원론, 그리고 교양과목 중 철학.

법학과는 다른 학과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1학년 때 가장 어려운 내용들을 배운다는 것이다. 보통 법학과에서 배우는 것을 대강 나눠보면 민법학, 형법학, 헌법학 이 정도 분야가 있는데, 1학년 때 대체로 각 분야의 핵심 원론을 배운다. 그 다음에 2-4학년 때 세부 각론을 배운다. 원론에 가까울 수록 말 그대로 법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과 정신을 배우기 때문에 내용이 매우 추상적이다. 그래서 나를 비롯해 처음 법학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개 글을 읽으면서도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경험을 하게 된다. 심지어 형법학 책은 한 페이지가 3-4 문장으로 구성된 경우들이 종종 있다. “아니하지 아니하지 아니한다”와 같은 3중 부정표현도 등장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과목들을 배우는게 재밌었다. 잘 이해는 못하겠지만 어쨋든 뭔가 심오하기도 하고 무언가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게 좋았다. 철학도 비슷한 이유에서 좋아했었다. 인문학의 가장 근본에 있는 개념들을 배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법학과 철학은 꽤나 열심히 공부했었다. 이와 같은 나의 “본질주의”적 성향은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업무에서든 일에서든 드러난 현상보다 그 밑에 숨겨진 근원을 파헤치는 것에 집중했다.

졸업과 퇴사

그렇게 4년이라는 짧은 시간은 지나고 졸업을 했다. 졸업 후에는 5주 정도 군대에 입영해 기초군사훈련을 받았고 그 이후에 2달 정도 되는 연수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의무경찰 부대에 간부로 배치됐다. 교대근무였기 때문에 하루하루는 숨가쁘게 돌아갔지만 사실 그렇게 일이 재밌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그곳에서 했던 일들은 오랫동안 한 자리에 서있기, 버스에서 대기하기, 단순한 행정문서 작성하기 정도였기 때문이다. 경찰대학의 4년도 아직 나의 창업에 대한 막연한 꿈을 접게하진 못했기 때문에 나는 생각했다.

딱 3년만 해보고 그 때도 창업이 하고 싶다면 그 때 퇴사하자.

왜 하필 3년이라는 숫자가 나왔었는 지는 기억이 안난다. 단지 내가 이 직업을 가볍게 스쳐지나가지 않았다는 감정을 남기기 위한 최저선이었던 것 같다. 약속했던 3년에서 1개월을 못채운 2년 11개월 차. 2022년 1월 7일 자로 나는 대학때부터 이어져 온 7년간의 경찰과의 인연을 마무리했다.